2026. 08. 13.

AI 시대, 한국 제조업이 10년 안에 바뀌어야 하는 이유

지식인사이드|2026. 08. 13.

지금 한국 산업이 서 있는 자리

산업통상부는 이름 그대로 산업 정책과 통상 정책을 다루는 부처다. 그런데 이름에 드러나지 않는 업무가 하나 더 있다. 석유와 가스, 핵심 광물 같은 자원 관리다. 제조업을 돌리려면 재료가 제때 들어와야 하고, 그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 이 부처의 일이다.

원유를 두고 흔히 자동차 연료나 공장 엔진 정도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훨씬 넓다. 원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는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제품의 원료로 들어간다. 그래서 나프타를 두고 모든 산업의 쌀이라고 부른다. 입고 있는 옷부터 쓰레기 봉투까지, 석유가 닿지 않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

김정관 장관이 취임한 지 1년 남짓 되는 동안 이 부처는 한미 통상 이슈와 중동 전쟁이라는 두 개의 큰 파도를 동시에 맞았다. 그리고 그 방어전과는 별개로, 앞으로 10년을 좌우할 판을 새로 짜는 작업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조선업 협력부터 반도체 투자, 제조업의 AI 전환까지가 그 내용이다.

주요 내용

미국이 한국 조선업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이유

한미 조선 협력의 상징처럼 쓰이는 말이 마스가(MASGA)다. 이번에 문을 연 한미 조선 협력 센터가 그 실체에 해당한다. 센터를 만든 배경에는 현실적인 답답함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관련 정책 문제가 생기면 산업통상부 한 곳을 찾아가면 대부분 해결되지만, 미국은 상무부, 해군부, 전쟁부, 백악관, 재무부로 업무가 잘게 나뉘어 있어 실무자들이 누가 카운터파트인지조차 알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센터는 그 창구를 한곳에 모으는 사랑방 역할을 맡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에 배를 지을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한 세대 만에 조선 인력과 기술자가 사라졌고, 재건에는 최소 3~4년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그 사이에는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중간 단계에서는 선체를 앞부분·중간·후미로 나눈 블록을 한국에서 만들어 미국에서 조립하게 된다. 자동차로 치면 최종 조립만 미국에서 하고 부품은 한국에서 공급하는 구조다. 미국이 이 일을 서두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대로, 군함 건조 세계 1위인 중국을 앞에 두고 배를 짓지 못하는 상황은 태평양의 주도권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조선 업계의 일감과 일자리가 늘고, 조선소가 대부분 지방에 있다는 점에서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사업이다.

호르무즈가 막혔을 때 벌어진 일

장관이 지난 1년 중 가장 위험했던 순간으로 꼽은 것은 중동 전쟁이었다. 이란과 오만 사이의 좁은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 원유의 약 70%가 지나는 길목인데, 전쟁이 나면서 그곳이 막혔다. 곧바로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터졌다. 배럴당 60불대였던 원유가 150불까지 두 배 이상 뛰었고, 가격보다 더 급한 수급 자체의 문제가 생겼다. 비싸더라도 일단 들어와야 공장이 돌고 차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응은 두 갈래로 이뤄졌다. 하나는 도입선 다변화다. 미국과 호주 등 중동 밖 루트를 열었고, 중동 물량도 호르무즈를 피해 사우디의 얀부항과 UAE의 후자이라항을 통해 들여오는 노선을 새로 뚫었다. 다른 하나는 속도였다. 모든 나라가 우왕좌왕할 때 가장 먼저 사우디를 찾아가 한국 물량을 먼저 확보해달라는 외교를 했다는 설명이다. 우회로의 비용은 만만치 않다. 호르무즈를 거쳐 아시아까지 오는 데 약 20일인데, 홍해가 막혀 희망봉으로 돌아가면 30일이 더 걸려 왕복 50일 수준이 된다. 수에즈 운하는 대형 유조선이 지나기에 좁고, 이집트 남부에서 지중해로 뽑는 송유관이 대안으로 검토되는 정도다. 가격 측면에서는 최고가격제를 도입해 리터당 2,200원까지 올랐던 기름값을 1,800원대로 되돌렸다.

미래 먹거리로 꼽은 3대 메가 프로젝트

상반기에 발표된 3대 메가 프로젝트는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다. 세 분야의 공통점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상반기에 기업들과 함께 프로젝트의 뼈대를 세웠고, 하반기의 과제는 이를 실제로 굴러가게 만드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부가 스스로 정의한 역할은 세 가지다. 공장 부지와 전기, 물, 입지를 함께 설계하는 디벨로퍼, 산업부·재경부·과기부·환경부·국방부·국토부와 지방정부, 기업 사이를 잇는 코디네이터, 그리고 인허가처럼 중간에서 멈춘 지점을 다시 밀어주는 퍼실리테이터다. 기업 임원 출신인 장관은 이 용어들이 원래 회사에서 쓰던 말이라고 설명한다. 종이 위의 정책이 아니라 없던 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기업에 있던 사람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용접 장인의 감각을 로봇에게 넘기는 일

AI 경쟁에서 한국의 위치를 묻자 돌아온 답은 담담했다. 1등은 미국, 2등은 중국, 한국은 3등이지만 사실상 나머지 나라는 모두 3등이라는 것이다. 대신 다른 각도를 제시한다. 인터넷도 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가장 잘 활용한 나라는 한국이었다는 것. AI 역시 만드는 것보다 활용하는 쪽에 승부처가 있고, 그 활용을 떠받치는 두뇌가 반도체다. GPU를 받쳐주는 HBM이 없으면 AI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나온 캐치프레이즈가 맥스(MAX), 제조 AI 전환이다. 왜 제조업인지는 용접을 예로 들면 분명해진다. 조선업의 핵심은 철과 철을 붙이는 용접인데, 이 작업은 온도와 습도, 바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불꽃의 빨간 부분, 파란 부분, 하얀 부분마다 온도가 다르고, 장인은 그날의 조건을 읽어 어디를 어떻게 댈지 판단한다. 책에 쓸 수 없는 암묵지이고, 10년 20년을 쌓아야 축적되는 기술이다. 미국이 배를 못 짓게 된 것도 결국 이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2~3년 뒤면 이런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진다는 진단이다. AI와 로봇은 이 기술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는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피지컬 AI는 상황을 인지하고 다음 행동을 스스로 정한다. 사람은 8시간 일하고 폭염에는 작업을 멈춰야 하지만 로봇은 날씨와 무관하게 이어갈 수 있고, 현장 노동자는 힘든 일을 넘기고 로봇 매니저라는 괜찮은 일자리로 옮겨간다. 장관은 지금이 제조업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10년이라고 말한다.

900조 반도체 투자와 속도전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투자 규모는 900조원이다. 1년 국가 예산이 800조 언저리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숫자지만, 실제로는 반도체 생산 공장인 팹 네 개를 짓는 데 800조가 들어간다. 노광 장비 하나가 수천억원인 산업 구조 탓이다. 그만큼 진입 장벽이 극단적으로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속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시장 구조에 있다. 구글, 애플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는 한번 납품받아 쓰기 시작하면 공급처를 바꾸지 않는다. 바꿀 생각을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가 시장을 가른다. 현재 2천억불 규모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5년 내 1조불 시대로 커질 전망이고, 한국의 점유율은 60~65% 수준이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늘어난 시장을 고스란히 다른 나라 기업에 넘기게 된다. AI 버블 논쟁에 대해서는 닷컴 시절과 유사한 면이 분명히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기대가 성과보다 과할 때 조정이 오는 것과 AI 시대라는 큰 흐름이 이어지는 것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재원에 대해서는 두 반도체 회사가 이미 그만한 돈을 벌고 있고 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함께 맡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들, 그리고 지방

지역 문제를 두고 장관이 꺼낸 비유는 나무다. 수도권은 이미 다 자란 거목이라 물을 한 바가지 더 주거나 규제를 하나 푼다고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지방은 묘목이라 공장 하나, 여건 하나만 바꿔도 쑥쑥 자란다. 그래서 저성장 국면에서 정부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 것이냐는 질문의 답은 지방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균형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지방이 성장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전체의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라는 진단이다.

구체적인 틀이 5극 3특이다. 도 단위, 시군 단위로 잘게 쪼개면 어느 쪽도 규모를 갖추기 어려우니 권역별로 묶고, 각 권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산업을 성장 엔진으로 골라 그쪽에 지원을 몰아주는 방식이다. 모든 지역에 같은 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어느 산업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기에 붙는 것이 메가 특구다. 기업이 지방으로 가지 않는 이유를 금융, 재정, 세제, 규제, 교육, 기술, 인프라 일곱 가지로 정리하고, 지정된 지역과 산업에 대해서는 이 일곱 가지를 전폭적으로 풀어주겠다는 구상이다.

청년 고용 이야기도 피하지 않았다. 6월 청년 고용률은 43.9%다. 원인으로는 두 가지가 꼽혔다. 하나는 전쟁과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탓에 기업이 채용에 나설 여건이 아니라는 점, 다른 하나는 한번 뽑으면 끝까지 안고 가야 하는 고용의 경직성이 신규 채용의 문턱을 높인다는 점이다. 다만 3대 메가 프로젝트와 5극 3특 성장 엔진이 만들어낼 신규 고용이 주로 지방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고용 정책과 지역 정책은 사실상 하나로 엮여 있다.

점을 찍어 선으로 잇는 일

임기 중 반드시 완수하고 싶은 과제를 묻자 돌아온 답은 다시 맥스였다. 그는 이를 점선면 전략이라고 부른다. 기업 하나가 AI를 도입하는 것이 점을 찍는 일이고, 점이 이어지면 선이 되고 선이 이어지면 면이 된다. 전 산업이 그렇게 연결되면 일자리와 경쟁력, 생산성 문제를 어느 정도 풀어낼 수 있다는 그림이다. 임기가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끝나는 순간까지 점을 찍어 선으로 잇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결국 이 이야기의 뼈대는 하나다. 인구는 줄고 젊은 인력은 제조 현장을 떠나며, 중국은 압도적인 생산 능력으로 밀고 들어온다. 그 상황에서 AI는 비용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제조업 자체를 존속시킬 수 있는 마지막 수단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그 전환을 감당할 인력을 길러내는 일, 즉 교육이 다시 출발점으로 놓인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사람을 키워 산업을 만들어냈던 원리가 지금도 똑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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