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내 속도'
여의도에서 오랫동안 시장을 지켜본 윤지호 평론가가 꼽는 투자의 첫 번째 원칙은 단순하다. 남들이 환호할 때 공격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모두가 몰릴 때 잘하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위험을 줄이는 방향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자기 속도를 초과하는 투자"라는 말로 설명한다. 체력이 안 되는데 잘 달리는 사람을 무리해서 쫓아가면 결국 지쳐 쓰러진다는 것이다. 투자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완주가 중요한 게임이며, 각자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 큰 수익을 낸 성공 사례를 접하더라도, 자신의 자산 상황과 현금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때 살 걸'이라는 후회가 가장 위험한 이유
과거의 저점을 떠올리며 "그때 샀어야 했다"고 되뇌는 심리를 그는 '하인드사이트(hindsight)'라 부르며 경계한다. 지나고 나서 보면 하나의 경로만 있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경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주가가 크게 흔들릴 때 움직일 수 있는 현금, 즉 캐시플로를 항상 준비해 두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익의 일부를 실현하지 않더라도 캐시성 자산으로 분류해두면, 시장이 흔들릴 때 오히려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진짜 용기가 필요한 순간은 '이유가 명확한 하락'뿐이다
그가 말하는 용기는 아무 하락에나 해당되지 않는다. 단순히 주가가 빠지는 게 아니라, 왜 빠졌는지 이유가 명확한 우발적 사건이 터졌을 때만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유 없이 서서히 빠지는 구간은 바닥을 확인하기 어렵고 회복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 오히려 두렵다고 말한다.
그는 손익비 개념도 함께 짚는다. 아래로 잃을 수 있는 손실 폭에 비해 위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충분하지 않다면 좋은 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시장 참여자들이 너무 쉽게 수익을 내던 시기에 그는 오히려 "매우 위험한 시기"라는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고 전한다.
주식시장은 승자가 소수인 '마이너스섬 게임'
강세장에서는 대부분이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주식시장은 승자가 소수인 게임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래서 다수의 판단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태도가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본다. 무조건 남과 반대로 가라는 뜻이 아니라, 다수 의견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갖추라는 의미다.
1년간 직접투자를 해봤지만 성과가 좋지 않았다면, "장기 투자를 안 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투자 방식 자체가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런 경우엔 개별 종목 대신 지수 추종 ETF로 방향을 바꾸는 편이 확률적으로 낫다는 조언이다.
좋은 기업을 가려내는 단 하나의 기준: 현금을 만드는 능력
그가 꼽는 좋은 기업의 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통장에 현금을 만들어내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장부상 이익은 의견일 뿐이고, 실제로 쌓이는 현금이 곧 가치라는 논리다. 그는 과거 영업이익은 좋았지만 영업현금흐름은 오히려 크게 마이너스였던 사례를 들며, 이익과 현금 흐름의 괴리가 컸던 기업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경우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지금 특정 소수 대형주에 자금이 쏠리는 것도 이 기준으로 설명한다. 그만큼 자본 비용을 감당하며 현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런 기업이라도 현금 창출 능력이 흔들리는 신호가 나오기 전까지만 유효하다는 전제를 함께 달았다.
개미가 주식으로 1억을 모으기 힘든 이유
부동산으로는 자산을 불린 사람이 많은데 주식으로 1억을 모은 사람은 드물다는 지적에, 그는 투자의 출발점이 본업의 현금 흐름에 있다고 답한다. 하나의 종목을 콕 집어 맞히는 방식이 아니라, 본업에서 번 돈을 꾸준히 투자로 쌓아가는 과정이 먼저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미래 가치' 개념을 함께 설명한다. 지금 쓰는 돈의 가치를 미래 시점에서 환산해보면, 오늘의 소비가 얼마나 큰 기회비용을 가지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계산을 할 줄 알면 자연스럽게 돈을 아끼게 되고, 그렇게 모은 현금이 복리로 쌓이면서 자산이 불어난다는 설명이다.
코스피, 일시적 고점인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인가
최근 코스피 상승을 두고 그는 한국 증시가 '금융자본주의'로 전환하는 큰 흐름 속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동안 오너 가치가 주주 가치를 압도해온 구조에서 벗어나, 주주환원과 거버넌스 개혁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만 최근 상승은 반도체 실적이라는 이익의 힘이 컸을 뿐, 거버넌스 개혁의 힘은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함께 짚었다.
그는 자본을 줄여 ROE를 끌어올리는 자사주 소각, 부실 자산 정리 등이 코스피 전반, 특히 코스닥에서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본다. 반도체 실적에만 의존하는 지금의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업이 자본 효율화로 성장할 때, 비로소 더 편안한 투자 환경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44세에 임원이 된 비결: 회색지대에서 던진 도전
이른 나이에 임원 자리에 오른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비유를 꺼낸다. 멀리서 다가오는 형체가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순간, 그 회색지대에서 오히려 더 과감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모두가 확신하는 순간에는 이미 매력이 사라진 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성공의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화려하게 주목받으려 하기보다, 스스로 신뢰받는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곁에 모인다는 조언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