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가 몰릴 때 봐야 할 건 '양'이 아니라 '질'
최근 미국에서는 스페이스X, 앤트로픽, 오픈AI 같은 대형 기업들의 기업공개(IPO)가 줄줄이 예고되고 있다. 세 기업의 예상 시가총액을 합치면 한국 GDP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흔히 이런 대형 IPO 러시를 두고 '공급이 너무 많이 풀려서 시장이 부담을 느낄 것'이라 걱정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상장 물량의 크기가 아니라 질이다.
IPO의 질을 가늠하는 두 가지 기준은 신주 발행 비중과 적자 기업의 상장 비중이다. 신주 발행이 많다는 건 그만큼 회사가 급전이 필요하다는 신호이고, 적자 기업의 상장이 몰릴수록 시장이 소화하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2021년에는 리비안, 로블록스, 코인베이스 등 적자·고평가 기업들의 상장이 몰렸고, 이 IPO들은 2022년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되기도 전부터 이미 힘을 잃고 하락하기 시작했다. 지수 자체는 별다른 이상 신호를 보이지 않을 때도, IPO ETF의 흐름을 보면 시장이 신규 물량을 얼마나 잘 소화하고 있는지 먼저 드러난다.
고점은 신호 하나가 아니라 '3박자'가 겹칠 때 온다
금리, 주도주 쏠림, IPO 부진 같은 개별 신호 하나만으로 고점을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신호들이 동시에 여러 개 겹칠 때다. 미국 금리가 오르는데도 주도주 쏠림이 풀리지 않고 오히려 심해지고, 신주 발행 비중이 높은 적자 기업들의 IPO가 늘고, 한국·대만·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증시가 부진한 상황까지 겹친다면 그때가 진짜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다만 이런 조합이 확인되더라도 정확히 고점 당일에 매도하는 건 실력이 아니라 운이다. 현실적인 대안은 신호가 겹치기 시작하는 구간부터 3등분, 5등분 등으로 기계적인 분할 매도에 들어가는 것이다.
AI 혁명은 '세탁기급'일 뿐이라는 반론, 틀린 말은 아니다
1880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장기 실질 성장률은 전기, 내연기관, 인터넷 같은 굵직한 기술 혁신에도 불구하고 연 2% 안팎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AI가 세탁기만도 못하다는 자조 섞인 비유는, AI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AI 역시 전기·세탁기급의 생산성 혁명이기 때문에 세계 경제 규모가 훨씬 커진 지금도 비슷한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에 가깝다. 세탁기가 여성 노동자들의 시간을 절약해 경제 활동 참여를 늘렸듯, AI 역시 산업으로서는 아직 몇 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혁명'이라 불릴 자격을 갖췄다는 해석이다.
쏠림은 이상 현상이 아니라 주식시장의 기본값이다
1929년부터 2019년까지 약 90년간 미국 증시 데이터를 분석하면, 전체 시가총액 증가분의 상위 10%를 차지한 종목은 평균적으로 전체의 0.1%, 개수로는 단 5개 안팎이었다. 2019년 한 해만 놓고 보면 그 몫을 가져간 건 단 2개 종목이었다. 모두가 1등 종목을 사고 싶어 하는 이상 쏠림은 필연적인 결과다.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전체 시가총액의 55%를 차지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수출 비중이 커서, 글로벌 시장을 상대하는 소수 대형주의 존재감이 유독 크게 나타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좋은 기업과 좋은 주식은 다르다
닷컴 붐 당시 대장주였던 시스코는 주가가 고점 대비 80% 하락한 뒤에도 몇 분기 동안 영업이익이 오히려 늘었다. 산업의 펀더멘털이 견조하다고 해서 주가가 계속 오르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기업 실적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투자자들의 기대가 앞서 나가는 속도가 더 빠른 구간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 구간에서는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주가는 쉬어가는 국면을 피할 수 없다.
안전자산의 의미는 이미 많이 퇴색됐다
과거에는 주가가 흔들릴 때 자산을 반대 방향으로 배분해 리스크를 상쇄하는 전략이 유효했지만, 팬데믹 이후로는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이 동반 상승·동반 하락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그나마 남아 있던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조차, 각국 중앙은행이 미국 국채의 변동성을 피해 매입을 늘리며 가격이 오른 측면이 크다. 문제는 금 시장 자체의 거래량이 국채 대비 매우 작다는 점이다. 살 때도, 유사시 팔 때도 가격을 밀어야 하는 구조라,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게 가장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최근 크게 올랐다가 조정을 받은 자산이 예전 상승 기울기를 다시 그릴 수 있을지는 회의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실전 조언: 불황을 미리 준비해서 사지 말 것
경기 침체기에도 견조한 소비가 이어지는 코카콜라, 맥도날드 같은 종목들은 하락장에서 '덜 떨어지는' 효과가 있을 뿐, 하락 자체를 피해가는 건 아니다. 급하게 안전자산이나 방어주로 미리 갈아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지금 보유한 주식을 어떻게 잘 익절해 나갈지 고민하는 편이 현실적인 대응이다. 결국 펀더멘털은 개별 기업 실적만이 아니라 전체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까지 함께 봐야 완성된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초기, '규모가 작아서 괜찮다'는 낙관론에 안주했다가 이듬해 지수가 반토막 나는 걸 지켜본 경험은 그래서 뼈아픈 교훈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