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8. 11.

제우스의 일곱 번의 결혼이 인생 체크리스트가 되는 이유

지식인사이드|2026. 08. 11.

신들의 이야기는 왜 이토록 막장인가

어릴 때 만화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인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불륜이 많고, 질투가 심하고, 신들끼리 싸움을 붙인다. 완전무결할 것 같은 존재들이 왜 이렇게 그려졌을까. 20년 넘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연구하고 강의해 온 김헌 교수는 그 질문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답의 출발점은 신화를 만든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설명하려면 신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에 대한 관념이 필요했고, 그 관념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만약 신이 완전무결하고 선하며 인간을 사랑한다면, 악한 자가 계속 잘 살고 힘 있는 자가 못된 짓을 해도 무사한 현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리스인들은 세상이 이 모양인 이유를 세상을 움직이는 신들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 방식은 인간에게 두 가지를 남긴다. 하나는 위안이다. 세상의 불합리가 인간만의 탓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실용적인 태도다. 신의 도덕성에 기대는 대신 제물을 바쳐 신을 달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인간이 신을 달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그리스인들이 신을 대하는 자유로운 태도를 보여준다.

주요 내용

제우스의 일곱 결혼에 담긴 성공의 조건

행복한 결혼의 표본이 될 만한 존재는 신화 속에 거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우스다. 정식 부인 헤라를 두고 숱하게 바람을 피웠고, 심지어 헤라는 첫 번째 부인도 아닌 일곱 번째 부인이었다. 이를 두고 고대 권력자들의 횡포를 신화적으로 조롱하고 풍자한 것이라 보는 해석도 있다.

김헌 교수는 여기에 상징과 은유의 독법을 더한다. 결혼을 능력의 결합으로 본다면, 최고 권력자인 제우스가 어떤 조건을 갖출 때 더 풍성한 삶과 확장된 성공에 이르는가를 묻는 이야기가 된다. 부인들의 이름을 하나씩 풀면 첫 번째는 지혜, 두 번째는 법도, 세 번째는 법의 보편적 적용이다. 지혜롭되 제멋대로 굴지 않고, 원칙을 세우되 누구에게나 두루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네 번째는 땅과 농업의 여신으로, 도덕적으로 뛰어나도 굶어 죽게 생겼다면 지도자일 수 없다는 조건이다. 다섯 번째는 문화를 관장하는 여신, 여섯 번째는 빛의 여신이다.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비추듯 세상에 그늘진 곳이 없게 만든다는 의미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가 가정을 상징하는 헤라다. 공동체 전체를 다스린다 해도 출발점은 가족이라는 것이다. 일부일처의 틀로 보면 한 가지만 잘하는 존재가, 일곱을 나란히 두면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된다.

김헌 교수는 이 목록을 자기 삶의 체크리스트로 쓴다고 말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충분한 정보와 지식과 전략을 갖췄는지, 원칙을 제대로 세웠는지, 피곤하거나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원칙을 두루 지켰는지를 점검하는 식이다. 기록이 없던 구전의 시대에 개념만 나열하면 아무도 외우지 못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재미있고 자극적으로 만들어졌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기억된다.

곁에 두면 안 되는 인간, 익시온과 돌론

피해야 할 인간상도 신화가 보여준다. 첫 번째는 은혜를 은혜로 갚지 않는 자다. 제우스는 익시온을 아껴 올림포스의 잔치에 초대했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제우스의 아내 헤라에게 반해 버린다. 설마 하는 마음에 제우스가 구름으로 헤라의 모습을 만들어 시험하자 정말로 정을 통했다. 익시온은 영원히 불타는 수레바퀴에 매달리는 벌을 받는다. 자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잘 대해 준 상대의 은혜를 저버린 행위에 신화는 유독 가혹한 벌을 내린다.

두 번째는 비겁한 자다. 돌론은 상을 준다는 말에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나섰다가 오디세우스에게 붙잡힌다. 살려 주면 말하겠다며 비밀을 모두 털어놓았고, 결국 그 정보를 쥔 상대가 적진을 말살한다. 자기 욕망을 채우려 나섰다가 동료 전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셈이다.

영웅에게도 그늘이 있다

다만 김헌 교수는 어떤 인물이 절대적으로 악하고 어떤 인물이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나누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제우스의 결혼을 긍정적으로 읽는 관점이 있는 한편, 제우스가 권력을 남용해 다른 존재들을 핍박하고 그 때문에 실패하거나 권력을 잃을 뻔한 모습도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영웅으로 불리는 아킬레우스도 마찬가지다. 명예가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전쟁 참가를 거부하고 물러앉은 사이 그리스인들은 트로이아의 기세에 밀려 죽어 나간다. 결국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대신 나섰다가 헥토르에게 목숨을 잃는다. 오디세우스 역시 실패한 많고 그를 따라간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모범이고 누가 최악인지 가르는 일이 아니라, 한 인물에게서 배울 점과 피할 점을 각각 찾아내는 일이다.

의지와 능력, 그리고 세 번째 요소

고전을 오래 연구했으니 인생을 잘 살고 있으리라 짐작하기 쉽지만, 김헌 교수가 끊임없이 느끼는 것은 인생에 답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인간의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는 보통 세 가지로 이야기된다. 첫째는 의지다. 성공한 사례와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지와 목표 의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능력이다.

문제는 세 번째다. 바로 운이다. 의지와 능력만으로 전부 해결된다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계산할 수 없는 요소가 늘 존재한다. 사람 운이 없는 경우도 있고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앞의 두 가지뿐인데, 세 번째 요소는 앞의 둘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인생에 늘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믿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지도 말라는 조언이 따라온다. 아무리 열심히 하고 능력을 갖췄어도 무너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겸허함을 품고 살아갈 때 덜 실패하고 덜 고통스럽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와 고통이 찾아오면 통제할 수 없는 운이었다고 설명하거나, 충분한 능력과 의지가 있었는지 스스로 점검한 뒤 손색이 없으면 더는 원망하지 않는다. 고전을 읽어 성공한다기보다 덜 고통스러울 방법을 찾는 쪽에 가깝다는 말이다.

신화는 지금도 우리 언어 속에 있다

옛날이야기를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지 않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신화는 생각보다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나사의 달 탐사 프로젝트에 붙은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은 달의 여신에서 왔다. 그 이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깊이를 바꾼다.

환경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가이아 이론도 마찬가지다.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이다. 그리스인들이 대지를 단순한 물리적 물체가 아니라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신처럼 여겼듯, 지구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고 보는 관점에 그 이름이 붙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셈이다.

서양에서는 어려서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익히며 자라기 때문에, 새로운 과학 분야든 사회 이론이든 속담처럼 자연스럽게 그 이름들을 끌어다 쓴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지금도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이유다. 신이 불완전하기에 인간도 그럴 수 있다는 인정, 그리고 좌절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그 거울이 돌려주는 위안이다.

 

원문 영상

YouTube에서 보기

새 글 이메일

지식인사이드에 새 글이 올라오면 메일로 알려 드립니다. 메일의 링크로 구독을 완료해 주세요.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

댓글은 로그인한 회원만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