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24.

"오랑캐 문자"라 손가락질 받던 한글, 600년 뒤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

지식인사이드|2026. 07. 24.

애민정신이 아니라 혁명이었다

세종의 한글 창제를 두고 흔히 '애민정신'이라는 말로 설명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얕은 해석이라는 지적이 있다. 소설 『세종의 나라』를 쓴 소설가 김진명은 한글 창제를 '목숨을 건 혁명'으로 규정한다. 세종 개인의 선의를 넘어, 당대 조선이라는 나라의 근본 구조를 뒤흔드는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사대주의에 갇힌 조선, 그리고 세종의 결단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본래 고려의 장군이었다. 명나라 건국 직후 요동 정벌에 나섰다가 군사를 돌린 위화도 회군, 그리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를 수 없다'는 논리로 세운 나라가 조선이다. 나라 이름조차 명나라에 물어 정할 정도로, 조선은 출발부터 중국을 머리 위에 두고 시작한 나라였다. 여기에 태종 이방원은 반대파를 모조리 숙청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명나라에 영원한 조공을 약속하는 편지를 보냈다. 세종이 왕위에 오른 것은 바로 이런 나라에서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하들의 정신 세계였다. 당시 글을 아는 양반은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했고, 이들이 읽는 책은 온통 공자를 비롯한 중국 경전이었다. 나라의 골격 자체가 중국 사상으로 짜여 있었고, 96%의 백성은 문맹 상태로 남겨져 있었다. 세종은 이 구조를 꿰뚫어 보고,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지성'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지성을 나눠주기 위한 문자를 만들기로 한다.

궁 안에서는 이 작업을 할 수 없었다. 대소 신료와 사대부, 심지어 자신이 키운 학자들까지 반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세종은 10여 년간 궁 밖을 오가며 은밀히 문자를 완성했고, 발표 후에는 "오랑캐 문자를 만들었다가 중국이 알면 큰일 난다"는 학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에 세종은 "너희가 음(音)을 아느냐"고 되물었다고 전해진다.

한글이 과학적인 진짜 이유

한글의 우수성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구조 자체에 있다. 마야 문자나 이집트 문자처럼 복잡한 부호 체계와 달리, 한글은 획 하나하나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그 경우의 수가 지구상의 모래알 수보다 많다는 비유가 나올 정도다. 문자가 곧 소리(phonetics)를 정밀하게 반영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담아내지 못하는 소리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세계 언어학계 일각에서는 앞으로 살아남을 다섯 개 문자로 영어, 중국어, 아랍어, 스페인어와 함께 한글을 꼽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글이 나머지를 합친 것과 맞먹는 경쟁력을 지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AI 시대에 문자와 소리의 일치도가 그만큼 중요한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게 무너지는 문해력

한국은 디지털 문명의 전파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지만, 그 이면에서 문해력 붕괴 속도 역시 가장 빠르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보와 오락이 스마트폰 하나에 응축되어 있다 보니 책을 사서 읽을 유인이 줄어들었고, 지하철이나 여행길에서 책을 손에 든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문해력은 단순한 정보 습득 능력이 아니다. 인내심을 기르고, 지식이 머릿속에서 결합해 창의성으로 이어지는 과정 전체를 뒷받침하는 힘이다. 이 힘이 무너지면 개인은 자신만의 정체성과 판단력을 잃고, 사회적으로는 계약 관계로 이루어진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시대,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

AI를 거부하는 태도로는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김진명의 진단이다. 다만 AI에게 일을 빼앗겼다고 자신을 무의미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사고라고 말한다. 그는 현대 철학이 도달한 결론, 즉 '절대적 진리는 없지만 각자 자기 삶의 운전자로서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인용한다. 35세에 깨달음을 얻고도 80세까지 하루하루를 한결같이 성실하게 산 것이 붓다의 위대함이었듯, AI 시대에도 인간이 붙들 수 있는 태도는 결국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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