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8,400에서 5,500까지 밀렸다가 다시 6,300선을 회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지나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지난 7월을 '역사상 최악의 한 달'로 기억한다. 이 급락장에서 무엇을 배워야 했고, 앞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에 대해 여의도 나침반 윤지호 평론가가 짚은 핵심 내용을 정리했다.
대중이 두려워할 때 용기를 내야 한다는 말, 이번엔 진짜였다
주식시장에서 자주 회자되는 격언이 있다. 대중이 환호할 때 조심하고, 대중이 두려워할 때 용기를 내라는 말이다. 낡은 지식처럼 취급받던 이 원칙이 7월 급락장에서 다시 한 번 검증됐다. 삼성전자가 20만 원 아래로 깨졌을 당시 선행 PBR 1배 수준까지 내려왔는데, 이는 작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6만 원대 수준의 저평가였다는 설명이다.
중요한 건 가치와 가격을 구분하는 태도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을 싸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속 가능한 현금 창출력이 있는 기업인지가 가치 판단의 본질이며, PBR 같은 상대가치 지표는 그 가치를 가늠하는 최종 안전판 역할을 한다.
주가는 이익의 그림자, 이익은 비즈니스의 그림자
많은 투자자들이 이번 급락장에서 놓친 지점은, 이익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재무제표는 과거를 정리한 자료일 뿐이고, 투자자가 실제로 평가해야 하는 것은 미래에 기업이 얼마나 현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다. 작년 하반기 삼성전자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시점을 돌아보면, 그때 이미 이익이 좋았던 게 아니라 데이터센터 인허가 신청이 급증하며 비즈니스 자체의 방향이 명확해졌던 시점이었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최근 목표주가가 하향된 것도 EPS가 크게 훼손돼서가 아니라, 동일 업종 내 상대가치(EV/EBITDA, PER 등)가 피어 그룹과 연동돼 함께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점을 짚었다. PER이 낮다는 건 단순히 '싸다'는 신호가 아니라 향후 성장 기대가 낮아졌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가 흔들린 진짜 이유는 데이터센터 착공 지연
반도체 업황 불안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미국 데이터센터 착공 지연이 지목됐다. 지난 4월부터 착공 지연 뉴스가 늘기 시작했고, 5월 기준 실제 착공 진행률이 계획 대비 30~50% 수준까지 지연되고 있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데이터센터 투자는 대부분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자금이 조달되는데, 이 구조가 본사 리스크를 차단하는 동시에 '숨은 부채' 논란을 부르기도 한다는 점도 짚었다.
여기에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 일정까지 겹치면서, 데이터센터 인허가가 취소되거나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가격에 선반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반도체 기업들이 선수금을 강하게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불확실성과 무관하지 않다.
가격에서 물량으로, 사이클의 무게중심이 바뀐다
지금까지의 반도체 사이클이 '가격(P) 상승'으로 이익을 키웠다면, 앞으로는 가격은 다소 낮아지더라도 '물량(Q)'이 늘어나는 사이클로 전환돼야 재평가가 가능하다는 진단이다. 마진율은 다소 낮아지더라도 전체 이익 규모는 커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AI 생태계가 실제로 자리 잡으려면 기술 혁신과 함께 사용료가 낮아지고 물리적 AI(피지컬 AI)까지 수익을 내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 사이에 '시차'가 존재하는 국면이라고 봤다.
비중 축소가 아니라 '바벨 전략'으로의 재편
그렇다고 반도체 비중을 급하게 줄이고 코스닥 테마주로 옮겨가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라고 경고했다. 대신 제시한 방향은 바벨(Barbell) 전략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스퀘어, 삼성전자 우선주 등으로 채웠던 반도체 비중을 시장 비중보다 다소 낮은 수준(약 40% 안팎)으로 유지하면서, 나머지는 배당주나 업종 내 지위가 견고한 퀄리티 종목으로 분산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미국에서도 최근 배당 스타일 종목의 성과가 좋았다는 점을 함께 언급했다.
왜 '뻔한 종목'을 사야 하는가
남들이 모르는 숨은 종목보다 이미 증권사 커버리지가 두텁고 목표주가가 낮춰지며 욕을 먹는 '뻔한 종목'을 사야 한다는 조언도 눈에 띈다. 이유는 정보 비대칭성 때문이다. 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정보 격차가 클수록 주주 자본비용이 높아지고, 이는 곧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시장과 솔직하게 소통하는 기업일수록 이 비용이 낮게 유지된다. 잘 알려진 종목이 급락했을 때 매수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정보 비대칭성이 제한적인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레버리지를 써서 수익을 본 뒤 손실로 전환된 투자자일수록 원금 회복을 위해 더 위험한 종목에 손을 대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한 방'을 노리는 심리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반기 지수 레벨과 포트폴리오 관리
지수 전망에 대해서는 연내 전고점(9,000선 부근) 재도달은 쉽지 않고, 대략 7,500~8,000 구간에서 등락하는 박스권 장세를 예상했다. 반도체가 지수의 약 60%를 차지하는 만큼 반도체가 밀리면 지수도 함께 눌리고, 반도체가 오르면 지수도 오르는 흐름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하반기 투자자에게 필요한 태도는 철저한 분산과 포트폴리오 관리이며, 관리되지 않는 투자는 투자가 아니라 '기도'에 가깝다는 표현으로 강조했다.
한국 증시는 세대별로 새로운 주도주가 꾸준히 탄생하는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점도 짚었다. 이번 사이클의 주도주는 반도체이며, 물량 확대 사이클로 전환되면 다시 한번 강한 흐름을 탈 가능성을 60~70% 정도로 보고 있다는 전망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