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질문
1974년과 1975년, 알랭 아스페가 실험을 설계했을 때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그가 다루려는 주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논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신의 연구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그 문제가 매혹적이라고 느꼈다. 지도교수는 그에게 '괴짜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며 안정적인 자리 없이는 말리고 싶다고 했지만, 그는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였다.
아인슈타인과 보어, 그리고 존 벨의 발견
이 논쟁은 언뜻 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문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존 벨은 이 철학적 논쟁을 실험으로 판가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른바 '국소적 실재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대상에는 측정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물리적 실재가 있으며, 서로 떨어진 두 대상은 각자 독립적인 실재를 가진다는 것이다. 반면 보어는 측정 장치를 언급하지 않고는 대상의 물리적 실재를 논할 수 없다고 보았다. 아스페의 실험을 비롯한 여러 실험들은 이 국소적 실재론의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보여주었고, 결국 물리적 실재와 국소성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는 국소성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양자 얽힘이란 무엇인가
양자 얽힘에서 놀라운 점은 서로 멀리 떨어진 두 대상을 별개의 물리적 실재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헬륨 원자 속 두 전자처럼 나노미터 이하의 거리에서 얽혀 있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주목한 발견은, 이 얽힘이 훨씬 더 먼 거리에서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이었다. 아스페 자신의 실험에서는 그 거리가 겨우 12미터에 불과했지만, 원자의 크기에 비하면 이는 엄청나게 먼 거리였다. 지금도 물리학자들은 묻는다. 얼마나 많은 양자비트를 얽힌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가. 100개, 1000개, 아니면 100만 개까지 가능한가. 이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 자체가 거시적 세계에서 왜 양자적 현상을 직접 관찰할 수 없는지, 왜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볼 수 없는지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바꿀 세계
양자역학은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 레이저 같은 발명의 토대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정보통신 사회를 가능하게 했다. 다음 단계로 주목받는 것이 양자컴퓨터다. 전력망을 예로 들면, 한쪽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다른 쪽에서 소비하는 구조에서 전기차 충전 위치가 매일 달라지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균형을 맞춰야 하는 복잡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고전 컴퓨터는 이런 문제를 정확히 계산하지 못해 근사값에 의존하지만, 양자컴퓨터라면 즉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약 개발에 필요한 거대 분자의 구조를 더 잘 이해하는 데도 응용될 수 있다. 다만 기술의 역사가 보여주듯, 가장 중요한 응용은 대개 처음부터 예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호기심보다 중요한 것, 집착
과학자에게 필요한 자질을 묻는 질문에 그는 상상력을 꼽았다. 틀에서 벗어나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기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표현으로 '집착'을 택했다. 가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면 그 목표에 사로잡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등장은 과학에 큰 혁명을 가져왔지만, 결국 지금도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연구를 하고 있을 뿐이며 단지 더 빨라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계산이 아무리 빨라져도 호기심과 상상력은 여전히 대체할 수 없는 자질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실험이 남긴 것
그가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초등학교 시절 교사가 보여준 작은 실험이었다. 탄산칼슘 조각에 식초를 부어 거품을 만들고, 그 거품이 공기보다 무거운 이산화탄소라는 것을 보여준 뒤, 타는 촛불이 꺼지는 모습으로 이를 증명했다. 무언가를 보여주고 그것이 왜 놀라운지 설명한 뒤, 그 설명을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시험해보는 과정, 이것이 바로 과학의 정신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런 원리에는 실생활의 응용도 뒤따랐다. 프랑스의 포도주 농가들이 발효 중인 큰 통에 들어가기 전 촛불을 먼저 넣어봐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과학과 문학,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
그는 쥘 베른의 '신비의 섬'을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한 책으로 꼽았다. 수학, 물리, 화학, 농업 지식만으로 문명을 재건하는 이야기였다. 훗날 그는 자신의 저서로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는데, 이는 과학자에게는 매우 드문 일이다. 죽음에 대한 질문에는, 의학과 약학이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만 물리학 역시 인간의 노동 방식을 바꾸어 몸을 덜 상하게 만든 기계들을 통해 수명과 삶의 질에 기여해왔다고 답했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처럼 그는 여전히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그리고 직관은 진보의 좋은 출발점이지만, 반드시 이론과 실험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