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귀향, 무엇이 그토록 오래 걸렸나
2026년 8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한국에서 개봉했다. 예매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관심이 쏠린 작품이지만, 원작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미리 알고 보면 훨씬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디세이아>를 직접 번역한 서울대학교 김헌 교수는 이 작품이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인간이 마주하는 유혹과 선택, 그리고 귀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지만, <오디세이아>가 그리는 그는 흔히 떠올리는 전형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하고, 자신을 믿고 따라온 부하들을 하나둘 잃는다. 김헌 교수는 오디세우스가 뛰어난 능력은 갖췄지만 동료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영웅상과는 어긋난다고 짚는다.
이 서사시를 이해하려면 먼저 트로이아 전쟁이 왜, 어떻게 시작됐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전쟁의 배경에는 신들의 결혼식에서 벌어진 사소한 다툼이 있고, 그 다툼이 10년에 걸친 전쟁으로, 다시 오디세우스 개인의 10년에 걸친 귀향길로 이어진다. 아래에서 그 전개를 차례로 따라가 본다.
주요 내용
황금사과에서 시작된 트로이아 전쟁

트로이아 전쟁의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 펠레우스의 결혼식에는 모든 신들이 초대됐지만, 불화의 여신만은 초대받지 못했다. 이에 분노한 그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적힌 황금사과 하나를 결혼식장에 던져 놓았고,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서로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며 다투기 시작했다.
심판을 떠맡은 제우스는 이 문제를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넘겼고, 세 여신은 실력이 아니라 조건으로 그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 헤라는 권력을, 아테나는 지혜와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을 약속했다.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하면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데려가는 사건으로 이어졌고,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이 군대를 일으키면서 트로이아 전쟁이 시작됐다.
트로이 목마, 논리적 빈틈을 메운 상상력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작전으로 흔히 트로이 목마가 꼽힌다. 그러나 이 작전에는 처음부터 허점이 있다. 목마 안에 병사를 숨겨 놓아도, 트로이아 사람들이 그것을 성 안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으면 작전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마를 의심 없이 불태워 버리거나 성 밖에 그대로 두었다면 매복한 병사들은 아무 성과 없이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트로이아 사람들이 목마를 굳이 끌고 들어가야만 했던 이유가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 어디에도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빈틈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이번 영화의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실사 중심의 연출을 고수해 온 감독이 이 논리적 공백을 어떤 상상력으로 메웠을지가 이야기 전개상 중요한 지점으로 지목된다.
열흘이면 될 뱃길이 20년이 된 사연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순조롭다면 닷새, 늦어도 열흘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10년이 걸렸다. 시작은 우연한 사고였다. 그리스 본토 남단, 폭풍이 잦기로 유명한 말레아 해협을 지나다 거센 바람에 밀려 북아프리카까지 항로를 벗어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낯선 땅과 낯선 존재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이 여정은 적대와 환대를 번갈아 겪는 구조로 짜여 있다. 로토스 열매를 먹는 사람들의 땅에서는 지나친 환대와 달콤함이 오히려 귀향의 의지를 꺾을 뻔했고, 뒤이어 도착한 외눈박이 거인의 땅에서는 정반대로 목숨을 위협받았다. 거인의 눈을 멀게 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 것이 화근이 되어, 거인의 아버지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게 된 것도 이 대목에서 벌어진 일이다.
키르케의 섬에서 태양신의 소까지, 잃어버린 부하들

이후 여정에서 오디세우스는 마녀 키르케를 만난다. 키르케는 찾아온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지만, 그 음식을 먹은 이는 돼지로 변한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게 한 뒤, 결국 그 섬에서 1년을 머문다. 이후 저승 세계로 내려가 예언자를 만나 앞으로의 위험을 미리 듣고, 세이렌의 유혹과 소용돌이·암초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좁은 해협을 지나며 부하 여섯을 잃는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태양신이 기르는 소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폭풍에 발이 묶여 한 달을 섬에 머무는 동안 식량이 바닥나자, 부하들은 절대 손대지 말라던 소를 잡아먹고 만다. 이를 알게 된 태양신이 제우스에게 항의했고, 제우스가 내린 벼락에 배가 부서지면서 소를 먹지 않은 오디세우스 한 사람만 살아남는다. 이 시점은 귀향 10년 가운데 3년째로 설명된다.
칼립소의 섬, 영원한 삶을 거절한 이유
홀로 표류하던 오디세우스는 여신 칼립소가 사는 섬에 닿아 7년을 머문다. 칼립소는 그에게 사랑을 베풀며 원한다면 신들이 먹는 음식을 주어 영원히 늙지 않는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인간으로 돌아가면 늙고 병들고 언젠가 죽지만, 남으면 젊음과 불멸을 그대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디세우스는 결국 인간의 유한한 삶을 선택해 떠난다.
그 선택의 실마리는 저승에서 만난 아킬레우스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누구보다 명예롭게 죽은 영웅으로 칭송받던 아킬레우스는 죽은 뒤 오히려 차라리 살아서 남의 밭이라도 갈고 싶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삶 자체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하다는 뜻이다. 김헌 교수는 이 서사시를 유한한 삶에 대한 예찬으로 읽는다. 영원히 산다면 어떤 순간도 특별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마주하게 되는 현실도 순탄하지 않다. 그가 죽었다고 여긴 아내 페넬로페 주위에는 왕위와 그녀를 노리는 구혼자 108명이 모여 있었고,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없이 자리를 지켜야 했다. 편안한 불멸을 포기하고 돌아간 자리조차 안전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귀향을 선택했다.
김헌 교수는 이 이야기가 먼 옛날 영웅의 특별한 모험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이불 속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안락하고 평온한 세계에 머물고 싶은 마음과 돌아가야 할 자리로 향하는 발걸음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오디세이아>가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라는 것이다. 영화 <오디세이>를 보기 전 이 맥락을 알아두면, 낯선 이름과 사건들 속에서도 이야기의 축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